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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5-12-10 04:38 조회 211 댓글 0본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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황주리 화가·동국대 석좌교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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「 졸지에 할머니 호칭 듣는 봉변 ‘오늘도 참는다’ 되뇌며 넘어가 외할머니 기억 활어처럼 생생 」
[그림=황주리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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